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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성룡-이연걸, 어릴적 나의 영웅 3인 탐색기


지금으로 부터 약 15년 전..TV에서 '용형호제'를 처음 본 뒤 '성룡'이란 배우를 좋아하게 되었다. 편안하게 생긴 외모가 좋았고, 약간 어리숙 하지만 재치있고 빠른 그의 몸놀림에 감탄했고, 그의 유머에 즐거워 했다. 얼마 후 좋아하게 된 또다른 배우.. 바로 '이연걸'이다. 황비홍과 정무문에서 보여지는 그의 권법과 무술에 넋을 놓을 지경이었다. 주말이면 토요명화나 명작극장에서 보여주던 그들의 영화를 보며 혼자 따라하면서 나의 어릴 적 우상은 바로 그들..무술인이었다. 아뵤~

무술 액션 히어로 3인. <이소룡 - 성룡 - 이연걸> 여러분은 누구를 제일 좋아하셨나요?^^
 
1. 영원한 신화 '이소룡'



* 이소룡(李小龍, 본명: 이진번, 영어이름: Bruce Lee)
* 출생 : 1940년 11월 27일 - 1973년 7월 20일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무술 배우이자 철학가, 절권도의 창시자이자 이며,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무술가.

미국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란 이소룡은 기존 홍콩의 무술 영화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그가 제작한 영화의 특성과 분위기는 홍콩 뿐 아니라 세계의 무술계와 무술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의 영화속에는 중국의 자존심과 민족주의가 투영되어 중국내에서 우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초반 미국 상영물에서 자신의 조연적 역할에 만족하지 못한 이소룡은 홍콩으로 돌아가지만 전설적인 감독 레이먼드 초우로부터 영화 출연 계약을 제시받게 된다. 바로 그 영화가 이소룡의 첫 주연 영화 '당산대형'이다.
이 영화는 전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순식간에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는다. 이후 그는 다시 두 개의 성공작을 찍게 되는데, '정무문'과 '맹룡과강'이 그것이다

1973년 이소룡은 골든 하베스트사와 워너 브러더스사의 최초의 공동제작 작품인 '용쟁호투'의 주연을 맡게 된다. 이 영화로 인해 이소룡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큰 명성을 떨치게 되지만, 작품의 촬영이 종료된 몇 달 후.. 영화 개봉 불과 3주전에 갑작스레 사망하고 만다. 비극적으로 개봉된 '용쟁호투'는 그 해 최고 수입을 올린 영화가 되었고 이소룡은 무술의 전설로 남게 된다



1) 당산대형 (개봉: 1971년)

이소룡을 세계적인 무술스타로 만든 영화.
이전에도 이소룡은 영화에 출연한 바 있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이소룡의 존재가 처음으로 전세계 무술 동호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수십년 전 개봉된 영화이기에 지금에 비하면 화려하지 않지만, 이소룡의 무술 연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소룡의 골수팬이나 무술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










2) 맹룡과강 (개봉: 1972년)

'당산대형'과 '정무문'을 거쳐 세계적인 액션스타가 된 이소룡이 처음으로 연출 및 각본까지 맡은 영화.





















3) 용쟁호투 (개봉 : 1973년)
할리우드가 제작에 참여해서 가장 대작으로 나온 영화.               
 
4) 사망유희 (개봉 : 1978년) : 이소룡의 미완성 작품.
이소룡의 마지막 작품이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2. 휴먼 폴리스 '성룡'



* 성룡(Jackie Chan,재키 찬)
* 출생 : 1954년 4월 7일, 홍콩

1954년 홍콩에서 태어난 성룡은 부모의 가난때문에 7 살 때 '우점원(于占元) 경극학원'에 보내져 10 년 간 수련한다. 비록 힘든 수련시간을 보냈지만, 여기서 훗날 홍콩영화계에서 함께 활약할 홍금보, 원표, 원규 등을 만나게 되고, 이들 모두 학원을 졸업한 뒤 단역 배우와 스턴트맨, 무술감독 등을 거쳐 영화계로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그 시기가 절대적 인기를 누리던 이소룡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직후이고 여러 상황에 의한 홍콩 액션영화의 침체기였기 때문에 성룡은 영화 주연 초기에 이소룡 스타일의 액션을 강요받으며 자신만의 재능을 소모했었다. 그러나 1978년 무술감독 출신의 연출 '원화평'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만든 <사형도수> <취권> 연작이 범아시아적으로 모두 큰 흥행을 거두며 약관의 나이에 스타덤에 올라선다. 그 후 취권,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홍번구 등을 비롯한 10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폭력이 심하던 홍콩무술영화에 코미디를 첨가하여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도록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 취권 (개봉: 1978년)

당시로는 드물게 연장개봉을 하면서 많은 관객을 동원한 초히트작이며, 성룡을 널리 알리게 해준 영화.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상대의 허점을 공격하는 모습에서 재미와 파워를 느낄 수 있다.

2) 오복성 (개봉: 1983년)
'복성'시리즈의 첫 착품.
절친 홍금보, 원표와 함께 출연한 영화로, 감독 및 연기를 맡은 홍금보의 재주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흥행으로 속편이 연이어 제작되었다.





3) 폴리스스토리 (개봉: 1985년)

'이소룡 = 사부' , '이연걸 = 무림고수' 라고 떠오르듯이, '성룡 = 경찰'에 가장 어울린다고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성룡 역시 가장 애착을 가지고 여러 속편을 쏟아냈는데, 1985년 <폴리스 스토리> 1988년 <폴리스 스토리2-구룡의 눈> 1992년 <폴리스 스토리3-초급경찰> 1996년<폴리스 스토리4-간단임무> 2004년 <뉴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완결편이 있다.












4) 용형호제 (개봉: 1986년)

성룡이 직접 감독을 맡았던 영화.
폴리스스토리와 함께 성룡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며, 다양한 모험이 동반된 액션과 반전, 유머가 풍부해 아직까지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이다.








3. 황비홍 '이연걸'

* 이연걸(Jet Li)
* 출생 : 1963년 4월 26일

8살에 우슈를 시작한 이연걸은 9년간 매일 8시간 이상 무술을 수련했다고 한다. 온몸에 피멍이 들고 손가락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으스러지는 혹독한 수업을 견뎌내며, 11세에 전국무술대회 소년부를 우승하고, 다음해 성년부까지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실력을 인정받은 이연걸은 무술 원로 5인방에게 맡겨져 특별수업을 받았다. 이후 전인미답의 중국무술대회 5연패를 성취한 이연걸은 17살에 영화계로 진출했다. 1973년 이소룡이라는 별이 사라진 뒤 대형 스타를 고대하던 홍콩 영화계는 그를 <소림사>의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이연걸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황비홍'이다. '황비홍'에 대해 이연걸은 영화에 대한 감각과 느낌을 알려준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후, 의천도룡기, 영웅, 정무문, 보디가드 등에 출연하며 무술의 달인, 무림고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 황비홍 (개봉: 1991년, 이연걸 출연)

이연걸의 영화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작품.
단지 흥행작이어서가 아니라, 액션을 바라보는 관점에 큰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내가 배운 대로 무술 동작을 보여주었지만, 다큐멘터리 필름을 본 후 액션 장면 속 내적인 긴장감까지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 정무문 (개봉: 1994년)

정무문 시리즈 중 가장 오락적이며 상업적인 영화로 평가되는 작품.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연걸의 인기에 힘입어 기획된 이영화는 정무문의 기본틀은 가져가되 시대적인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3) 이연걸의 보디가드 (개봉: 1994년)

4) 무인 곽원갑 (개봉: 2006년)
100년간 '중국의 영웅'으로 불린 실존 인물 '곽원갑'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이연걸이 생애 마지막 액션영화로 선택한 작품이며, 선택 이유로는 '무술의 진정한 정신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하고 했다.




3D 및 디지털 최첨단 그래픽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21세기 액션 영화..지금의 영화도 재밌고 멋있지만, 때로는 인간적인 고뇌와 함께 심신을 단련하면서 진정한 무예의 고수가 되기 위한 그들의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 나의 어린시절 순수함을 되새기며 이젠 명절에도 틀어주지 않는 이들의 영화를 돌려봐야 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