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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잘라야 했던 이유


올해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체포된 후에도 강한 절개와 애국심으로 끝까지 기개를 꺽지 않으셨던 안중근 의사.

그 분을 기개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 바로 손가락 혈서이다.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잘라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장한 각오와 결심을 보여주기 위함일 수도 있는데, 그 이유를 말해보려면 우선 그의 업적을 논해봐야 할 것이다.



1. 안중근 의사 업적


하얼빈 역 사건외에도 안중근 의사는 대부분의 삶을 애국계몽, 민족교육, 의병활동 등에 헌신하였다.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고, 무예를 익히며 스스로 성장의 길을 터득하였고,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가 1906년 부친의 부음소식을 듣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 후 삼흥학교, 돈의학교 등을 설립해 민족교육에 힘을 기울였고, 다음 해인 190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후 1908년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비록 의병활동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그 가능성을 항상 되새기며 조국수호의 의지를 굳게 다졌다. 이런 상황에서 안중근 의사는 동료들과 독립투쟁의 의지를 불사르며 '단지동맹'을 맺게 되었다. 태극기를 펼쳐놓고 왼손 무명지를 자른 뒤 선혈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이라고 쓴 후 대한민국 만세를 세번 불렀다고 한다.

이 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여순 감옥에서 끔찍한 옥고를 치뤘으나 끝까지 절개를 잃지 않고 투항하다 1910년 3월 26일 일제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다.


2.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자른 이유?

* 스스로에 대한 굳은 의지
큰 뜻을 품고 의병을 조직하였으나 성공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본인 스스로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쓰러질 수는 없었기에 동료들과 굳게 마음을 다 잡고 의지의 표현으로 손가락을 잘랐을 것이다.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떼어내며 쓴 혈서는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를 일으켜준 힘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 의병들에게 투쟁의욕 고취
주도적으로 항일 투쟁을 벌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의병들이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단지동맹'을 맹세한 것 자체가 그것을 의미할 테니.. 


* 조국수호에 대한 강한 열망
사실 아무리 본인의 의지를 굳건히 하려 한다해도,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상상 못할 고통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감내하면서까지 혈의 맹세를 한 것은 그만큼 조국수호에 대한 강한 열망이 가슴속에 자리잡았기에 가능했으리가 생각한다.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힘쓰는 사람이 되라.